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학을 간다면 수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 대학교 수학은 중고등학교 수학과는 다르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수학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수학과 관련된 교양서적부터 수학자들의 일화, 에세이들을 읽고 이른바 수학 뽕에 차올라 대학교는 무조건 수학과를 가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결정해서 일까, 혹은 수학과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일까, 지금 왠지 모를 후회가 남는다. 수학과에 가기로 정했거나 수학과에 진학할걸 고민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알아두면 좋을 사실과 조언을 모아봤다!
내가 정말 수학을 좋아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수학은 분명 매력이 있는 학문이다. 진리와 구조를 탐구하는 학문이니, 일단 그 대상부터가 멋있다. 뿐만 아니라, 수학자들의 기이하지만 어딘가 매력 있는 언행들을 듣다 보면, 나도 그 일원이 되고 싶다. 이에 더해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라면, 이른바 수학 뽕에 차오를 확률이 매우 높다.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대학 전공이 꼭 직업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학 전공이 사소한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4년동안 많은 시간을 수학을 공부하는데 쓰겠다고 정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수학은 난이도로만 따지면 손 꼽힐 만큼 어렵다. 내가 이 실용성은 없고 난이도는 최상급인 학문을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에 4년을 투자해서 배우고 싶은지, 냉정하게 정해야 한다. 지금 읽은 책에서 느낀 감동이 정말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의 감동인지 잘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내가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전공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결정을 내릴 때는 내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가로 결정하면 안 되고, 내가 이 결정을 내림으로써 포기하는 것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바탕으로 내려야 한다. 단순한 예시로 수학을 전공하면 어느정도 돈과 거리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정말 돈이 되는 공학을 포기하고 순수학문을 전공해도 만족할 수 있을까? 대답은 쉽지 않다.
연구자가 될게 아니면, 복수전공을 해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수학과에 가기로 정했다면, 4년 동안 수학만 공부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내가 연구자가 될 만큼 수학에 재능이 있고 흥미가 있다면 수학만 열심히 공부해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학과에서 공부했던 지식은 취직 시장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혹자는 수학은 다른 학문의 근간이기 때문에 수학을 공부하면 다른 학문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 처음부터 유용한 그 학문을 공부하면 될 일이지, 수학을 공부하고 그 학문을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찌 됐든, 이미 수학과에 와서 되돌리기는 너무 늦었거나, 그럼에도 수학을 너무 배우고 싶다면 복수전공을 하거나 다른 것을 꾸준히 공부해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같은 수학과라도 해도 개개인의 성향은 다르기 때문에 무엇을 공부해야 될지 모를 수도 있다. 아래의 리스트는 수학과들이 많이 전공하고, 취업도 잘 된다고 알려진 과들이다. 이 중에서 개론 수업을 몇 개 들어보고 본인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학문을 복수 전공하면 좋다.
1. 공학(전기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등)
2. 컴퓨터 과학
3. 경제학
이해가 안 되면 우선 암기하면, 나중에 이해된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학은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도 그럴 때, 공식을 애써 외우려 하지 않아도, 다양한 응용문제를 공식에 적용하다 보면 공식을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 그 이유는 암기는 지식을 활용할 때 가장 잘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 수학에서는 암기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교 수학과 고등학교 수학의 가장 큰 차이는 증명이다. 증명은, 논리를 써서 내가 전제한 정리나 공리들이 사실이라면, 이 정리로 사 실 이다를 보이는 과정이다. 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공리와 정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증명을 많이 접해서 증명 테크닉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는, 정리나 공리의 구조가 나날이 복잡해지면서, 정리를 이해하고 활용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과 수업을 따라가려면 공리나 정리를 우선 암기하고, 진도를 나가면서 이를 활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중고등학교 때 수학을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학과에서는 암기가 필요 없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해석학을 공부했는데, 그 충격은 이로 말할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과로 대학을 입학하고 초반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학을 재미있게 배웠지만, 점차 어렵기만 하고 실용적이지 않는 수학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가치관도 바뀌고, 또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돼서 지금은 수학과 함께 컴퓨터 과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학보다는 컴퓨터 과학이 적성에 더 맞았고, 수학과 수업에서 배운 지식이 컴퓨터 과학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는 수학과에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요약
1. 수학과를 가기 전에 내가 정말 수학과를 가야 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2. 수학에 재능과 열정이 있어 연구자가 될게 아니라면 복수전공 등으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3. 대학 수학을 공부할 때, 수학은 이해라는 편견을 버리고 암기를 많이 해야 한다.
'수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식주의 (Formalism), 수학의 모든건 현실에 있지 않은데, 그렇다면 수학은 뭘까? (1) | 2024.05.02 |
---|---|
🥤 빨대의 구멍은 몇 개 일까? (3) | 2023.12.16 |
수학과에서는 어떤 수업을 들을까? (0) | 2021.07.02 |
수학은 왜 쓸데없이 엄밀할까? (0) | 2021.03.26 |
수학을 꼭 공부해야 할까? (0) | 2021.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