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입학을 결심했을 당시에는 수학을 좋아했다는 것이고, (지금은 어떤지는 부디 묻지 말아 주길...)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도 수학의 즐거움과 유용함을 알아줬으면 한다.
하지만 전공생의 입장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수학을 정말 꼭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다.
나는 한 수학 전공생으로써 수학을 꼭 공부해야 할까를 나름대로 답해 보고자 한다. 나는 절대 수학계나 교육계를 대표하지 않으며, 어떠한 권위도 없다. 그냥 일개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꼭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는 공부해야 하고, 또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까?
일단 수학을 크게 4가지로 나누고자 한다.
1. 중학교까지의 수학 (교양수학)
2. 고등학교까지의 수학 (기본수학)
3. 대학교 기초과정의 수학 (대학기초수학) - 기본적인 증명, 이산수학, 계산에 바탕을 둔 선형대수학, 엄밀한 증명이 없는 미적분학
4. 대학교 상위과정의 수학 (대학심화수학) - 증명에 바탕을 둔 선형대수학, 해석학, 추상대수학
그리고 상황은 크게 3가지로 설정하고자 한다.
1. 일반적인 경우 (거의 모든 사람)
2. 이과 쪽 대학을 진학하는 경우
3. 수학을 많이 쓰는 이과쪽 대학인 경우 (물리학, 경제학 등)
1. 일반적인 경우 (거의 모든 사람) - 중학교까지의 수학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고등학교 미적분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과과정의 경우 문과를 선택하더라도 기초적인 미적분은 배우도록 되어 있고, 이는 사고력이나 논리력 발달에 분명한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논리학을 배우는 게 더 목적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칙연산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능력을 과소평가하지만, 나는 사교력 발달에 있어 수학적 개념을 익히고 적용하는 경험이 우리의 기초적인 사고력 발달에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학교를 떠나고 남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성과라고 했다. 자세한 수학적 개념은 머릿속을 떠날지라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도출했던 경험과 그 과정에서 길러진 사고력은 평생 남는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학교까지의 수학 정도는 완벽하게 배우는 게 대단히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러분이 고등학교 과정이나 대학교 기초 과정의 수학을 배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3가지 이유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이 대학교 기초 과정의 수학을 공부해 볼 것을 추천한다.
1. 고등학교까지의 수학을 공부해서는 수학의 본질을 알 수 없다.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의 수학은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해 문제를 푸는 게 주요한 목적이다. 하지만 수학의 꽃은 증명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수학의 본질이 증명이라서 그렇다.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의 약점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만을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직관은 사냥을 하고 관계를 맷기위해 진화되었지,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소위 비 직관적이라 불리는 것들이 세계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양자역학이 그렇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그렇다. 수학에서 증명을 시작한다는 말은, 직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미리 정의된 형식적인 논리를 사용해 공리로부터 명제를 도출하는 기계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떤 체계의 본질만 공리를 통해 정의한다면, 그 체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를 통해서) 쉽게 말해, 우리의 직관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라도 사고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하고 쉽게 알고 싶다면 여기(예정)를 참고.
칸토어의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는 말은, 수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감동적으로 들린다.
2.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수학은 확실하다.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확실하다. 과학은 대부분의 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내가 오늘 복권이 당첨될 확률이 낮다는 것도 어느 정도 확실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이 뿐만 아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은 불확실성으로 넘쳐나 있다. 이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확실한 뿌리를 내리고 나아가고 싶다고 살면서 한 번이라도 느껴 봤다면 그 답은 수학에 있다. 수학은 공리로부터 도출된 '확실한' 명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추상적인 얘기만은 아니다. 실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학문에도 이런 수학의 확실성에 기대어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경제학을 심리학적으로 실험 가능한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공리들로부터 도출된 이상적인 조건의 정리들의 모음으로 이해한다던지, 물리학을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던지 하는 방식은 수학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3. 앞으로 어떤 학문을 공부하든(특히 이과 계열의 학문이라면) 수학적 지식과 직관은 항상 도움이 된다.
수학이 범용성이 넓은 이유는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특정 구조를 공리를 통해 정의하고, 그 구조에서 쓰이는 정리들을 미리 증명해 놓는다. 이는 직관의 일부가 되고, 다른 학문을 공부할 때 특정 개념이나 구조가 그 공리를 만족한다는 것을 보이거나 직관적으로 느낀다면, 전혀 모르던 개념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양의 개념과 본질을 순식간에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가히 현실세계에서의 마법이라도 해도 될 거 같다. 이과 계열의 학과라면 당연히 이와 같은 능력은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2. 이과 쪽 대학을 진학하는 경우
이과 쪽 대학을 진학한다면 당연히 고등학교까지의 수학을 잘 알아야 하고, 필요한 수학이 있다면 학교에서 강의를 개설해 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수학과 깊게 연관이 없는 이과 분야라 하더라도, 대학교기초수학이나 대학교심화수학까지도 배워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이과 쪽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사고방식을 심화 수학을 배우면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산수학을 배우면 이산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기초적인 문제 해결력이 높아진다.
증명에 바탕을 둔 선형대수학을 배운다면, 선형대수학에 대한 사고가 깊어져 세상을 보는 본질이 달라지고 이는 어떤 분야든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해석학을 배운다면 그야말로 머리를 논리에 빠트려 다시 개조하는 느낌일 것이다.
3. 수학을 많이 쓰는 이과 쪽 대학인 경우
수학을 많이 쓰는 이과 쪽이라면 당연히 대학교 기초 과정 수학뿐만 아니라 일부 심화 과목 수학도 배워야 한다. 특히, 석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특히 이론 물리학의 경우) 수학과에 버금가는 양의 수학을 들어야 할 경우도 많고, 석사 생각이 없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들어서 나쁠 것은 없다. 이는 당연히 수학과가 경제학이나 물리학, 화학을 듣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솔직히 말해서 심화 수학을 듣는 노력이 수학을 아무리 해비 하게 쓰는 학문이라고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물리학의 경우 에외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통계는 꼭 배웠으면!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던 통계는 꼭 배웠으면 좋겠다. 일상생활에서 단순한 선택을 내릴 때부터, 경제생활, 정치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통계적인 직관과 능력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어딘가에서 의무교육의 목적이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거라 했는데, 이 것이 의무교육의 목적이라면 활용 가능한 통계가 왜 중학교 과정에 없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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