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을 하다 보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주식은 북한 때문에 코리안 디스카운트 (Korean Discount)를 받고 있어,
저평가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나 네이버 같은 한국의 우량 기업들을 모아 놓은 지수인 코스피 지수는 10년 넘게 2000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5년 동안 19% 올랐으니 1년에 3.8%, 예금과 비슷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을 모아둔 S&P 500 지수는 5년 동안 90%가 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상향 중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주식은 정말 저평가일까요?
저평가의 의미
저평가라는 건 원래 가치보다 더 낮게 거래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즉, 원래 가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한국 주식이 저평가인지 아닌지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가치를 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것은 4가지가 있는데요.
- 점점 돈을 더 잘 벌게 됐는가?
- 번 돈을 주주들에게 잘 나눠 주는가?
- 앞으로도 지장 없이 (예측 가능하게) 돈을 잘 벌 거 같은가?
- 얼마나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1개 씩 알아보겠습니다!
🐜 1 - 점점 돈을 더 잘 벌게 됐는가?
주식은 회사의 지분을 나타냅니다.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회사가 번 돈의 일부를 가질 수 있고, 회사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그 회사가 얼마나 돈을 잘 벌게 됐는지와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관적으로도 당연하죠!?)
한국은 주가가 내려서 기업 또한 어려운 줄 아실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모두 증가해 왔습니다. 그러니 1번째 점점 돈을 더 잘 벌게 됐는가는 문제가 없습니다.
🐜 2 - 번 돈을 주주들에게 잘 나눠 주는가?
아무리 기업이 돈을 잘 벌게 됐어도 이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은 가치가 없는게 당연합니다. 내 꺼인데 나에게 이익이 없는 건 당연히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파트를 샀는데 1년에 100일 정도만 살 수 있다면 아파트 가격이 지금처럼 많이 올랐을까요?
회사가 자기가 번 돈을 얼마나 주주들에게 돌려 줬는지를 측정하는 지표 중의 하나가 주주환원율입니다. 회사가 주주들한테 돈을 돌려 줄 수 있는 2가지 방법 (배당, 자사수 매입)을 더한 뒤, 번 돈으로 나눈 값입니다. 즉, 번 돈 중에 몇 %를 주주들에게 돌려줬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슬프게도 한국의 주주 환원율은 전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이게 주가랑 관련이 깊은 게 주주 환원율이 92%인 미국은 시가총액 중가분 만큼 주가가 올랐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 밖에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미국 기업들은 다 착하고 한국 기업들은 다 나빠서 주주 환원율이 다른 게 아닙니다. 한국의 상법상 이사회의 독립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고,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해도 소송해 처벌할 조항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3 - 앞으로도 지장 없이 (예측 가능하게) 돈을 잘 벌 거 같은가?
같은 1억을 벌더라도 이걸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벌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2명이 똑같이 1억을 벌었다고 해 보겠습니다.
- 사람 1: 월급을 매달 꾸준히 적금을 들어서 연말에 1억이 생김
- 사람 2: 월급의 일부를 급등주를 사고팔기를 반복해서 연말에 평가 손익이 1억이 됨
사람 1의 경우 굉장히 예측 가능합니다. 만약 연말쯤에 전세 계약을 맺은다면 큰 마음의 걱정 없이 1억을 마련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람 2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전세금을 마련해도 다음은 모릅니다. 이건 극단적인 예시지만 이걸 기업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코카콜라나 같은 기업은 돈을 예측 가능하게 법니다. 갑자기 돈을 극단적으로 적게 벌 일도 별로 없고, 갑자기 돈을 극단적으로 많이 벌 일도 없습니다. 실제로 코카콜라의 매출을 내릴 때도, 오를 때도 있지만 보면 큰 변동 없이 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HMM (구 현대해상)이라는 회사는 배로 화물을 운송하는 회사입니다. 화물 운송업의 특성상, 경기가 좋으면 수출이 늘어나서 운송량이 늘어나는데 경기가 안 좋으면 내려갑니다. 뿐만 아니라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한데 기름값은 변동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매출을 보면 변동이 매우 심합니다.
이 두 기업이 같은 1조를 벌더라도, 코카콜라의 가치를 더 많이 쳐 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종사하는 많은 산업들이 경기에 민감한 산업이거나 사이클 산업이라는 겁니다. 🥲 반도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자동차 (현대차, 기아차) 같은 산업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 4 - 얼마나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같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이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돼 돈을 버는가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똑같은 1조를 벌어도 10조를 들여서 번 거랑, 5조를 들여서 번 거랑은 확실히 다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기업 활동을 잘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은 대우 같은 대기업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파산했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SK가 대기업이라고 토스, 쿠팡, 당근이 될 수 있을까요?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B2C는 매우 다른 업종이고 다른 노하우와 문법을 필요로 합니다. 거대한 제조 대기업이 많은 자본을 투입한다고 여기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SK가 11번가를 운영한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한국 대기업 재벌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굴리는데 큰 관심이 없습니다. 삼성이 보험도 하고 카드도 합니다. 심지어 아파트도 짓습니다. 현대는 왜인지 백화점을 운영합니다. (현대 백화점이 못 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현대의 자본이 정말 백화점으로 가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는 검토할 여지가 있습니다.)
북한 때문에 저평가이다?
사실 북한 때문에 저평가라는 말은 대만 앞에서 광징히 공허한 말이 돼 버렸습니다. 대만의 코스피라 할 수 있는 가권 지수는 TSMC 같은 기업들의 영향으로 우상향 중입니다.
그도 그럴게, 대만의 주주 환원율은 약 50%이고, 한국의 주주 환원율은 약 30%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주주 환원율 뿐만 아니라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 등 여러 안 좋은 관행이 널려 있습니다.
정말 한국이 북한과의 전쟁 위협 때문에 저평가라면, 대만은 중국이 2027년까지 아예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미국 국방부가 경고했는데 저평가를 받지 않은 게 설명이 안 됩니다.
美사령관 "中, 2027년까지 대만침공 준비 완료"…中 "위협 과장"(종합) | 연합뉴스
(워싱턴·베이징=연합뉴스) 김동현 정성조 특파원 = 중국이 대대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대만을 무력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www.yna.co.kr
결론
한국 주식 중에서도 일부 주주환원을 잘하고 재벌이라는 정의에 맞지 않는 기업도 분명히 있습니다. (주가 등락과 상관없이) 꾸준히 배당과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하는 미래에셋 그룹이나 최근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한 네이버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 상장을 해서 일반 투자자의 자금을 받았으면서 주주환원을 하지 않고, 이사회에서 일부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반복적으로 내립니다.
- 사이클의 높낮이가 큰 산업에 많은 비중이 치우쳐져 있습니다. (반도체, 선박 등)
- 각 기업이 경제적 혜자가 있는 산업에 집중하지 않고 재벌식으로, 문어발 확장을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 상 낮은 PBR, PER을 보면서 한국 주식은 저평가가 맞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알면 알 수록 한국 주식은 저평가가 아닙니다. 한국 주식들의 주주 환원율과 자본 효율성을 보면 현재 가치가 그다지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PBR이 낮으면 뭐 할까요? 기업을 청산해서 주주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주주가 되면 뭐 할까요? 이사회에 주주들에 대한 충실 의무가 없어 일부 대주주들에 유리한 결정만 계속 반복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 경제, 제태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국 리츠, ETF로 투자하기 (0) | 2024.07.31 |
---|---|
우리사주? 스톡옵션과 뭐가 다를까 (0) | 2024.03.01 |
퇴사하는데도 돈을 줘? 퇴직금 관련 용어/개념 알아보기 (0) | 2024.02.28 |
📈 스톡옵션을 받으셨나요? 관련 용어/개념 알아보기 (2) | 2024.02.26 |
🤑 연봉 관련 용어 총 정리! (계약연봉, 원천 징수액, 추가수당, 인센티브, IC, TC) (0) | 2024.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