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여우 길들이기: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드라마

평점: 5 / 5 ( ★★★★★)

 

사실 5점으로도 부족한 느낌입니다. 비문학을 읽으면서 이렇게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고 몰입하는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가 과학책에서 가볍게 읽고 넘기는 1줄의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현실의 여러 고난들을 이겨내며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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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먼 옛날 인간의 선조들이 늑대를 가축화 시켜서 개로 진화했듯,
여우도 육종을 통해 가축화 시키는 걸 관찰하면
가축화 과정의 여러 비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늑대와 여우는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고, 그리 먼 관계도 아니기에 여우의 가축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소련의 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의 실험에 관한 책입니다. 사실 과학적인 내용은 별로 안 나오고, 실험에 엮인 여러 인물들과 시대적 배경, 실험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 실험의 현재 근황 등을 담은 책입니다.

사실 건조한 사실만 나열하면 이 실험이 그렇게 어려울까 싶습니다. 그냥 온순한 여우들 모아서 교배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이 실험이 과학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세세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 여우는 1년에 매우 짧은 발정기에만 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즉, 1년에 1세대 밖에 교배를 못 합니다.
• 온순한 여우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여우 우리에 손을 넣었을 때의 반응으로 구분한다고 합시다. 그럼 어떤 사람이 어떻게 다가가느냐, 어떤 속도로 손을 넣느냐, 말을 버느냐 안 버느냐 등 여러 조건에 의해 여우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걸 여우 농장 직원들에게 잘 교육하고 철저히 기록하도록 해야 합니다.
• 무작정 교배를 시키면 유전자가 너무 가까워서 근친 교배를 시킨 것과 비슷한 유전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 각 곳에 흩어져 있는 여우 농장들끼리 적절하게 계산된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순환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에서는 유전학을 부정하고 엉터리 사이비 과학을 주장하는 트로핌 리센코라는 과학자 때문에 여우 실험 같은 정상적인 유전학 연구를 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소련이 붕괴해 사람 먹을 식량 조차 없게 돼 실험이 완전히 중단될 위기에 처한 건 덤입니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사실은 여우는 생각보다 엄청 포악하다는 겁니다. 귀여운 외모와 이 책의 실험에서 어느 정도 가축화된 여우에 익숙해서 모를 수 있지만 실험자들은 ‘불을 뿜는 용’에 비유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여우가 점점 가축화되는 과정을 보면 생명의 신비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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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환원주의적 사고가 만연한 사람들은 흔히 수학/물리학을 제외한 과학은 우표수집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저도 이런 사고 방식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문의 본질이 정보 수집에 가깝다고 해서 그 활동이 가치 없거나 더 쉬운건 결코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실 요약만 보면 제가 왜 이런 감동을 느꼈는지 알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물 1명 1명의 인생과, 공산주의/자본주의 같은 이념을 넘어 진실을 알고 싶어서 계속 협력하는 과학자들과, "우표 수집"이라고 비하되는 관찰일지를 위해 인생을 바친 연구자들을 보면 인류의 위대함이 느껴집니다.

인간이 동물들을 가축화 시킨 과정을 알고 싶어서 10명,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평생 여우를 교배하고, 세세한 사항을 모두 기록하고, 유전자를 분석하고, 호르몬을 분석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전자에 관해, 진화에 관해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됐고 이게 현대 의학이 되고, 교과서가 됐습니다. 무미건조한 과학적 발견들의 뒤편에는 연구자들의 인생이 있었습니다.

(글을 읽기만 했는데 느껴지만 여우들의 귀여움은 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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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잇아웃 링크

• https://booksitout.com/book/979115783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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