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며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고등학교 자퇴는 많은 사람이 평생 경험하지 못 하는 일이기에 하면 어떤 느낌인지, 후회는 없는지 적어보고자 합니다. 혹시 자퇴를 고려중이거나 결심한 분이 계시다면 참고가 됐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 왜 자퇴했을까?
(그때 당시에는) 학교가 쓸데 없다고 생각
🐜 수업의 질이 너무 안 좋았다
제가 자퇴한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학교가 쓸데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퇴를 한 지금은 여러 이유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생각을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자면, 일단 수업의 질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영어 선생님은 첫날부터 수능을 강조하시며 한 문장 한 문장을 분석하시며 문법을 설명하시고, 역사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교과서를 졸린 목소리로 읽으셨고, 수학 선생님은 공식을 무조건 외우라 하셨습니다. 저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공부 철학이 있었기에 선생님들의 이러한 태도에 거부감이 들었고, 혼자 공부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거라 점점 생각하게 됐습니다.
🐜학교의 각종 시스템들이 쓸데 없다고 생각
또, 학교의 각종 시스템들이 쓸데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분 지각하면 벌을 세우고, 야자를 밤늦게까지 하고, 버스를 왕복 1시간씩 타며 등하교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어쩌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비슷한 이유로 같은 반에 친했던 친구가 자퇴를 먼저 함
하지만 솔직히 결정적이였던건 자퇴를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비슷한 이유로 같은 반에 친했던 친구가 자퇴를 먼저 했기에 그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강하게 자퇴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가 자퇴를 하니 갑자기 제 행동과 생각에 정당성이 생긴 느낌이였습니다.
🐜 부모님을 설득한 얘기
당연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습니다. 사실 자식이 자퇴한다고 하면 선뜻 그러라고 하는 부모님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너무 확신에 차 있었기에 자퇴 후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을 짜서 부모님을 설득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 자퇴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 자퇴한 후에 어떻게 지낼 것인지
등을 설명 드렸고, 다소의 갈등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퇴를 허락 받았습니다.
그때 당시의 저는 제가 설명을 잘해서 자퇴를 허락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영어 교사였던 어머니께서 자퇴를 하도 한다고 하기에 수업이 어떻길래 궁금해서 수업을 참관하셨다고 합니다. 그때가 하필 딱 영어 수업 시간이였습니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이 어머님이 어릴 때 하던 방식과 똑같이 가르치는 걸 보고 제가 하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셔서 결국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 꿀팁 : 수업이 너무 별로라 자퇴하고 싶다면 부모님을 참관수업에 대리고 와라!?
🐜 자퇴한 후의 일상
자퇴를 한 후 첫 몇 달간은 행복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던 생활을 반복하다가 아무런 통제와 억압이 없는 일상이 찾아오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큰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걸 곧 깨달았습니다... 🕸️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저는 이른바 현타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한한 자유 앞에 저는 도저히 자기 관리를 하고 절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예 포기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려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샌가 새벽 2시~4시에 자는 건 일상이 됐고,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날 동기가 전혀 없기에 12시쯤에 일어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은 일상을 공유하지 않고 다른 삶을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였던 것은 가끔씩 같이 자퇴했던 친구를 만나서 같이 놀고 공부했습니다. 자퇴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서로 얘기를 나눴던 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자퇴를 안 했더라면 졸업을 했었을 나이에 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결과적으로 저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 자퇴를 후회할까?
그토록 확신했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자퇴를 후회합니다.
자퇴를 함으로써 저는 3가지를 놓쳤습니다.
1.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은 채 몇 날 며칠을 보낸 적이 많았고, 이는 내 정신건강에 매우 안 좋았음
자퇴를 하기 전에는 사람과의 대화나 상호작용이 부족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고 선생님을 만나고... 이런 관계가 학교를 그만두고도 당연히 지속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건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다른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건 어려웠고, 혼자 있는 것도 좋아했던 저는 딱히 관계를 유지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일상은 결코 건전한 게 아니였습니다. 지금 와서는 그때 뭐를 하면서 지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점점 밖에 나가는 거 자체가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워졌습니다. 원래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과 허물없이 대화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맺었던 관계나 상호작용의 부제가 이런 성향을 점점 가속시켰습니다.
2. 나는 젊은 날에 건전한 생활 습관을 익힐 기회를 잃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를 가는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자퇴를 하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가면 이런 생활습관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많지만 그래도 분명 고등학교 때 열심히 살았던 과거는 몸에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매우 늦게 자고, 매우 늦게 일어납니다.
3. 나는 결과적으로, 공부를 적게 했다.
제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였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었고 평소에 언어에 관심이 많아 영어나 일본어도 공부했습니다. 즉,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인생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되는 공부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고, 실제로 수능을 봐서 대학 갈 실력이 못 됐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할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에서 오는 상실감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 자퇴해서 좋았던 점
결과적으로 자퇴를 한 것을 후회하지만, 분명 좋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1.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공부해 볼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 정해진 것들을 정해진 깊이만큼 공부해야 합니다. 제가 공부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수업에 없으면 공부할 수 없고, 공부하고 싶은 것들도 정해진 깊이보다 깊게 공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퇴를 하면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것을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 영어, 경제학, 사회학, 피아노 등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때 공부한 것들은 앞으로의 제 인생에서 굉장히 큰 자산이 될 것은 확신합니다.
2. 은퇴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미리 체험해본 거 같다.
사실 자퇴 후의 일상은 은퇴 후의 일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저는 은퇴후의 삶을 간접 체험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하루하루 정해진 일상과 목적이 있는 삶이 좋고 그렇기에 은퇴를 그다지 좋아할 거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쉽게 바뀌는 게 사람이라 한 달만 일해도 바뀔 수도 있으니 지금 판단하지는 않기로!
3. 관계를 소중히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딱히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퇴를 하고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게 됐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저도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들과 뜻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오는 거 같습니다. 자퇴를 하지 않았다면 오만하게 관계를 재단하는 삶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고수했을 거 같아서 어찌 보면 자퇴를 한 게 다행인 거 같습니다.
🐜 마치며
마지막으로, 여태까지의 모든 내용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실제로 자퇴를 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한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다시 돌아가 자퇴 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래 것들을 반드시 지킬 겁니다.
- 친구들을 주기적으로 만난다.
- 학원이나 대학교 등 집단에 소속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사람은 혼자만 있으면 점점 피폐해진다)
아무쪼록, 어떤 선택을 하든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없을 것은 확신합니다. 제가 자퇴를 후회하는 건 분명 최선을 다했던 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자퇴를 고민하는 분들은 저의 실수를 반복하지 마시고 자퇴를 하든 말든 최선을 다해 살면 후회 없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퇴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3가지 것들 (0) | 2021.04.15 |
---|---|
서울 스카이 방문 후기 (롯데타워 전망대) (0) | 2021.04.07 |
🇺🇸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본 후기 (0) | 2021.03.30 |
미국에 산다고 영어가 늘지 않는 이유 (0) | 2021.03.28 |
미국에서 2년 산 내가 앞으로는 한국에서 살고 싶은 이유 (3) | 2021.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