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개인적인 얘기라 할지 말지 망설였지만, 누군가에는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남깁니다. 저는 몇 개월 전에 성인 ADHD로 진단을 받고 현재 약을 복용 중입니다. 처음 의사 선생님이 ADHD가 의심된다고 했을 때는 ADHD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 (산만하고 집중을 못 함)와 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제가 ADHD일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검사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계속되는 권유에 후에 검사를 받고 ADHD로 확진을 받았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제가 ADHD로 진단을 받았는지, 현재는 어떻게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지, ADHD로 의심된다면 어떻게 하셔야 되는지 제 이야기로 참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얘기와 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드리는 것뿐입니다. 절대 제 얘기만 듣고 중요한 판단을 내리시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신과를 간 이유
우선 저는 ADHD가 의심되서 정신과를 찾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성인 ADHD의 경우 많은 분들이 처음부터 본인이 ADHD라고 생각해 찾는 경우는 많이 없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 스스로를 ADHD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겪고 있는 ADHD 증상을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함.
- 뚜렷한 증상이 있었다면 어렸을때 이미 진단을 받았을 확률이 높아 성인 ADHD로 초진을 받기보다 개선됐거나 이미 치료를 받고 있음.
저 또한 이랬습니다. 진단을 받은 지금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 10분을 집중을 하기 위해 제가 했던 많은 노력과 결심들은 분명 ADHD의 증상이였지만 남들도 비슷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처음 ADHD가 의심된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내가? 말도 안 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검사도 거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겪은 ADHD 증상)
그렇기 때문에 저는 ADHD가 아닌 꽤 오랜 기간동안 지속됐던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사실 정신과를 찾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본 정신과에 대한 다양한 동영상으로 편견이 점차 사라진 것도 있고 제 지인 중 한 분이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사실을 알게 돼서, 힘들면 정신과를 찾을 수도 있다는 용기를 얻어서 찾게 되었습니다.
ADHD가 의심된다고 한 이유
그렇게 정신과에서 찾았고 초진에서 다양한 설문지와 함께 심리검사, 문장 완성 검사 등을 한 결과 우울감과 불안이 높게 나타나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고 경과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의 부작용이 심해서 적절한 약을 조정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고, 약을 꾸준히 챙겨 먹는 것도 힘들어서 증상의 개선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약을 복용했습니다.
그렇게 반년 이상 정신과를 찾으면서 약을 복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호전을 있을지언정 증상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약뿐만 아니라 중간에 다양한 치료도 병행하였지만, 모두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에 답답함을 느껴 여러 가지로 찾아본 결과 우울증 환자의 30% 정도는 약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가 그 경우가 아닐까 약간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의사 선생님이 ADHD가 의심된다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ADHD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학군지는 아니였지만 학창 시절에는 최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공부는 어느 정도 잘하는 편이었고, 나름대로 괜찮은 대학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한 ADHD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강력히 권유하셨고 결국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제게 ADHD 검사를 권유한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었습니다.
- 이상하리만큼 약을 꾸준히 챙겨 먹지 못함
- 1년 정도 항우울제를 복용했는데도 증상에 호전이 거의 없음 (근본적인 다른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됨)
- 낮에 무기력하고 밤이나 새벽에 활동함
위의 증상이 있다고 반드시 ADHD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인 ADHD의 경우 우울증을 비롯한 기분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울증을 비롯한 기분장애가 장기간 호전되지 않으면 ADHD 검사를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제가 약을 꾸준히 먹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보통 약을 복용하는데 이렇게까지 어려워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어려운 ADHD의 증상과도 맞았습니다.
ADHD 검사
그렇게 ADHD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ADHD 검사를 망설였던 것은 심리적인 거부감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ADHD 검사는 그 날의 약 처방까지 포함해서 총 67,900이 나왔으니, 분명 가볍게 받을 수 있는 검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권하신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비용이 부담스러워도 꼭 받아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도 아니였다면 돈이 많이 아까웠을거 같아 망설이는 이유는 이해합니다)
ADHD 검사에서는 게임을 하듯이 모니터에 다양한 도형이 나옵니다. 그럼 지시에 따라 특정 도형이 나올 경우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검사도 있고, 숫자를 나온 순서대로 누르는 등의 검사도 있습니다. 일단 전반적으로 문제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1시간 정도 이런 과제를 하기 때문에 아마도 ADHD의 특징인 집중력을 장시간 유지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듯했습니다.
검사를 하고 나온 뒤에 대기실에 조금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결과는 저는 ADHD가 맞았습니다. 우선, 저는 문제를 맞히는 능력에는 이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응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크게 떨어졌고, 특히 집중해서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믿을 수 없어서 검사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없냐고 물어봤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모든 검사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검사에서 ADHD인 사람을 ADHD가 아니라고 경우는 있을 수 있어도 ADHD로 나온 사람이 아닌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하셨습니다.
아래는 제가 실제로 받은 ADHD 검사 결과지의 일부입니다.
이 그래프가 나타내는 것은 제가 특정 도형이 나올 때 스페이스 바를 정확하게 누르는 능력(누락 오류, 오경보 오류)은 평균보다 낮은 정도로, 큰 이상이 없지만, 반응 시간의 경우 평균에서 2 표준편차를 벗어난 정도로 몇 배 이상 오래 걸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ADHD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아야만 콘세타를 비롯한 ADHD 치료제에 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경우 치료제는 한 알이 12,000원이고, 매일 복용해야 하니 ADHD가 의심되고 치료를 원하는 경우 반드시 검사를 받는 게 좋습니다.
ADHD로 진단을 받고 난 후에는?
이렇게 ADHD 확진 판정을 받고 의사 선생님이 가장 처음 한 말은,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였습니다. 저는 검사는 해보겠지만 확진 판정이 나올지는 몰랐기 때문에 얼떨떨한 느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거 같기도 했습니다.
우선, 의사 선생님은 ADHD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대충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ADHD는 선천적으로 뇌의 기능에 이상이 있어서 생기는 증상이다. (그래서 성인 ADHD는 갑자기 생기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도 똑같했는데 발견하지 못한 거라고 합니다. 어릴때는 괜찮았다가 갑자기 집중력이 떨어진거면 우울증일 확률이 더 높다고 하네요.)
- ADHD는 약을 먹으면 나아질 수 있다.
- ADHD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쉽게 가능한 것들도 많은 노력을 들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우울증을 비롯한 기분장애를 갖는 비율이 매우 높다.
- 비슷한 이유로 인간관계도 힘든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셨고, 듣다 보니 제가 겪고 있는 증상들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ADHD 치료제인 콘세타를 처방받고, 현재까지도 복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약을 복용했을 때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용량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용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고, 특히 약을 복용하지 않은 날은 체감이 더 됐습니다.
무엇보다 크게 체감을 했던 날은, 후에 ADHD 검사를 받은 방과 같은 방에서 심리 검사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2시간에 달하는 긴 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ADHD 검사를 받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장기간 집중할 때는 보통 너무 괴롭고, 머리를 뜯고 싶은 충동이 들었었는데 그 날은 전혀 그러지 않고 너무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힘들게 살아왔던걸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혹시 본인이 ADHD인지 의심이 간다면, 비용은 부담돼도 검사를 한 번 받아보시길 추천합니다. 7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비싸다면 비싸지만,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비용이라 생각하면 매우 저렴합니다.
요약
1.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음.
2. 1년 정도 다녀도 호전이 없어서, 의사 선생님께 ADHD 검사를 추천 받음.
3.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검사 결과 ADHD가 맞았음.
4. 지금은 약을 복용하면서 훨씬 좋아졌음.
추가 : 병원 정보
가끔 댓글에 병원이 어디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도 제가 간 곳이 강남 어디 유명한 곳이라면 당연히 소개 드리겠지만, 제가 간 곳은 그냥 집 근처 병원입니다.
정신과는 특히 초기에는 매주 다니셔야 하기 때문에(약만 받아간다 하고 1달치 달라고 해도 안 줌) 집이랑 가까운게 최우선입니다! 불안하신 마음은 알겠지만 우선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상담 받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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