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며...
감수성이 풍부하던 고등학교 때 생전 쳐 본 적 없는 피아노에 갑자기 꽂혀 집 앞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기 전 3년 동안 꽤 열심히 꾸준히 피아노를 쳤습니다. 당연히 바이엘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엄청 잘 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원하던 곡들을 치니 상당히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타지에 가다 보니 피아노가 없기도 하고, 대학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 피아노는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직장인이 되고 다시 피아노를 쳐 보고 싶어 생전 처음으로 새로운 야마하 전자 피아노를 사고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됐습니다. (근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피아노를 치는게 쉽지는 않아 사실 방치 중입니다. 😂)
하지만 피아노를 다시 치기 전에 그 동안 피아노를 치면서 후회했던 것들을 돼돌아보고 효과적으로 연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회고해 봤습니다!
1 - 손가락 번호를 잘 지키자
사실 저는 피아노를 정석적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성인 때 피아노를 시작한 많은 분들의 특징인 거 같은데요. 보통은 치고 싶은 곡이 있고 그 곡을 빨리 치고 싶어 기초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노 선생님도 성인이 취미로 피아노를 하는 거고 전공이나 대회를 나갈 것도 아니니 기초보다는 하고 싶은 곡을 완성하는데 집중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가장 뼈 아픈게 손가락 번호입니다. 웬만큼 복잡한 악보를 보면 음표 위에 작은 번호 같은 게 있는데요.
저는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굉장히 창의적인 (?) 손가락 번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새로 만난 피아노 선생님이 손가락 번호를 굉장히 강조하시는 걸 보고 손가락 번호를 지켜 연습해 봤더니 어려운 부분이 훨씬 쉬워지고 실수도 적어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손가락 번호로 곡을 완성하면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모든 기초적인 걸 다 연마하고 피아노를 치는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손가락 번호만큼은 꼭 지키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손가락 번호를 등한시해서 낭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
2 - 독학을 아무리 좋아해도 적어도 초반에는 레슨을 하자
저는 독학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집중하며 빠르게 배우는 그 쾌감이... 상당히 좋습니다. 🤪 영어나 일본어 같은 언어도 상당 부분 독학으로 배웠고, 현재 직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그래밍도 독학 비중이 50%는 넘습니다.
하지만 피아노는 아닙니다... 피아노를 독학으로 하면 오히려 나중에 더 힘듭니다. 피아노는 운동 같은 (손가락 뿐 이지만) 실제 몸을 움직여서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근육이 기억합니다.
머슬 메모리
운동을 어느 정도 한 중급자 이상이 수 개월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운동을 다시 하면 원래 도달했었던 운동
namu.wiki
그래서 잘못된 습관이 들면 고치가가 정말 쉽지 않은데 문제는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이 지뢰 투성입니다. 사소하게는 손목을 쓰는 방법부터 크게는 위에서 언급한 손가락 번호까지. 이 모든걸 독학으로 배우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기초가 쌓이면 테크닉 연습을 하며 칠 수 있는 곡을 늘려가는 과정이니 독학으로 가능하지만 초반에는 꼭 레슨을 받아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고생했던 세월을 생각하니... 억울합니다.
3 - 피아노를 치는거에 만족하지 말고 연습을 하자
피아노를 처음 시작하고 화려한 곡들을 칠 수 있게 되니 피아노를 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에 완성했던 곡들을 치는데 보냈습니다. 칠 수 있는 곡들이 많아지면서 1시간을 과거에 쳤던 곡들을 복습해도 시간이 충분하게 됐고, 만족감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문제는 이건 연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런식으로 연습하는 동안 저는 오랫동안 피아노 실력이 제자리 걸음이라 느꼈습니다. 그도 그럴게, 어떤 분야든 실력이 늘려면 집중해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피드백을 받는 의식적인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1만 시간 법칙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상당히 공감이 갔습니다.)
📖 1만시간 법칙의 재발견: 재능은 타고날까?
소개한 분야에 매우 뛰어난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 부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기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다고 노력한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지는 않는다.
jinkpark.tistory.com
하지만 제가 하고 있던건 그냥 뇌를 빼고 피아노를 치는 제 모습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충분할 수도 있는데 저는 항상 나아지고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병이 있어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꼭 저 같은 병(?)이 있지 않으셔도 피아노 실력을 꾸준히 늘리고 싶으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게 연습인지 아니면 뇌 빼고 피아노를 치는 내 모습이나 음악을 즐기고 있는지 구분해야 합니다. 후자로 만족하면 상관없지만, 실력이 느는 건 전자입니다.
4 - 내가 박치라 단정짖지 말고 꾸준히 박자를 연습하자
저는 상당한 박치입니다. 실제 레슨을 받을 때도 가장 많이 지적받은 게 박자입니다. 메트로놈 연습을 할 때 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맞추는지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박치라 단정 짓고 박자를 고치려는 노력을 딱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동네에서 여는 작은 대회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대부분은 초등학생, 중학생인데 저 혼자 대학생으로 참가하는 다소 웃긴 상황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완성된 곡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하지만 박자도 연습을 했습니다. 붙점연습이라 불리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놀랍게도... 박자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도 메트로놈에 맞춰서 연습하는 건 힘듭니다. 하지만 박자는 노력으로 된 다는 것을 깨닫고 박자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음악의 3 요소 중 1개가 박자와 관련 있는데 박자를 포기하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겠죠! 😤
음악의 요소(1) ; 1. 음악의 3요소(3要素) - 어웨이던 음악지식백과
음악의 요소1. 음악의 3요소(3要素)요약음악은 일정한 질서 아래 악음(樂音, 고른음, musical tone)이 조화·결합되어 성립된다. 계기(繼起)하는 소리의 길이에 일정한 시간적 질서를 부여하면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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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혼자서 치면서 만족하지 말고 대회든 어디든 누군가에게 보여 줄 기회를 갖자
제가 실력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한 때를 꼽으라 하면 위에서 언급한 동네의 작은 음악회에 참가한 때입니다.
혼자 방구석에서 좋아하는 곡을 1개 1개 완성해 갈 때도 물론 행복했지만, 이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며 굉장한 몰입의 경험을 했습니다. 실력적으로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갖는 게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으면 꼭 경험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도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는 지금 열심히 연습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또 가질 생각입니다.